- 같은 약품은 같은 색 … 오인․오주입 위험 사전 차단
- 현장 실증 거쳐 민간 확산 … 국가 안전관리의 새로운 표준 제안
인천시가 지난해 인천환경공단 13개 사업장, 103개 화학물질 취급시설에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을 적용한 데 이어 올해부터 이 사업을 민간사업장으로 확산한다.
현장에서 축적한 성과를 토대로 업종·시설별 적용기준과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새로운 표준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화학물질별 전용색상을 저장탱크부터 배관·밸브·주입구까지 일관되게 적용하고, 서로 다른 물질의 주입 호스가 잘못 연결되지 않도록 전용 연결장치를 적용하는 예방 체계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착각하더라도 그 실수가 오인·오주입·혼입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업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화학물질과 주입구를 잘못 확인한 순간의 착오가 유독가스 발생과 다수의 인명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인천시는 이들 사고를 작업자 개인의 부주의 문제로만 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작업자에게 더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각적 식별 체계와 물리적 연결 차단 장치를 갖추는 방향으로 화학사고 예방 정책을 전환했다.
화학사고 10건 중 9건 이상, 시설 결함·안전기준 미준수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인천에서 발생한 화학사고는 모두 49건이다. 이로 인해 5명이 숨지고 92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은 시설 결함 23건, 안전기준 미준수 23건으로 두 원인이 전체의 93.9%를 차지했다. 특히 2025년에는 8건의 사고로 1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쳐 최근 12년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화학사고는 설비의 대규모 파손이나 복잡한 공정 이상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누출된 화학물질이 호흡기나 피부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서로 반응하는 물질이 섞이면 유독가스와 고열이 발생하고 화재·폭발로 확대될 수 있다. 물질의 독성과 누출량, 기상 조건, 주변 환경에 따라 사업장 밖 시민 생활권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화학물질 취급 현장의 표시체계는 사업장과 시설마다 다르다. 저장탱크에는 화학물질명이 크게 표시돼 있지만 배관에는 유체의 흐름 방향만 표시되거나, 밸브에는 관리번호만 부착돼 작업자가 별도의 도면이나 작업지시서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주입구에는 물질명이 없거나 오래된 라벨만 남아 즉시 식별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탱크에 색상이 표시돼 있더라도 배관과 밸브, 주입구에 같은 표시가 적용되지 않으면 작업자는 여러 정보를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숙련된 작업자도 순간적으로 배관이나 주입구를 혼동할 수 있다.
이에 인천시는 현장에서 화학물질을 쉽고 직관적으로 구분하고, 잘못된 물질은 애초에 연결하기 어렵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같은 약품은 같은 색…오주입 이중 차단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같은 화학물질에 같은 색상을 적용해 저장탱크부터 배관·밸브·주입구까지 일관되게 표시하는 시각적 식별체계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초록색, 황산알루미늄은 파란색, 수산화나트륨은 노란색 등으로 구분해 작업자가 화학물질의 저장과 이송, 주입 과정에서 물질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장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물질의 배관과 주입호스가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전용커플링도 적용한다. 연결구의 직경이나 나사산, 핀 또는 키의 위치 등을 물질별로 다르게 해 작업자가 색상이나 물질명을 잘못 확인하더라도 연결 단계에서 오주입을 한 번 더 차단하는 방식이다.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새로운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사업이 아니다. 현행 법령에 따른 취급기준, 경고표지, 안전교육, 시설검사와 비상대응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각적 식별과 물리적 연결 차단 장치를 더해 사람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에서 민간으로, 인천의 현장 경험을 국가표준으로
지난해 8월 공촌사업소에서 발생한 염소가스 사고 직후 인천시는 화학물질 사고 대책회의를 열어 유사 사고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했다.
이어 2025년 9월 17일부터 11월 6일까지 인천환경공단 13개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전수 점검했으며 차아염소산나트륨과 황산알루미늄, 수산화나트륨 등 15종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총 103개 시설의 개선을 완료했다.
시설별로 약품탱크와 주입구에 화학물질명과 전용색상을 표시하고, 주입구에는 명패와 시건장치를 설치했다. 탱크 주변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 보관함을 배치했으며, 약품 주입 중임을 주변 작업자가 알 수 있도록 회전경고등도 설치했다.
인천시는 공공시설에서 확인한 적용 경험을 올해부터 민간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으로 확대한다. 지난 7월 20일 관내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화학물질 안전관리 교육에서 안전신호등의 취지와 적용 방법을 안내했으며, 희망 사업장을 대상으로 현장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한다.
전문가가 사업장을 방문해 취급물질과 저장·이송 공정을 확인하고, 오주입 가능 구간과 기존 표시상태를 분석해 시설 여건에 맞는 색상표시와 전용 연결장치 적용방안을 제시한다.
인천시는 올해 민간사업장의 자율적 참여를 확대하고, 2026년부터 2027년까지 현장 적용 결과를 축적해 업종·시설별 적용방법과 유지관리 기준을 정립할 방침이다. 2027년 이후에는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화학물질별 시각적 식별체계 도입 ▲저장탱크·배관·밸브·주입구의 일관된 표시기준 마련 ▲오주입 방지를 위한 전용 연결장치 적용 등 인천에서 실증한 예방방안이 법령과 지침 등 국가 안전관리 정책에 반영되도록 중앙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다.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를 현장 개선으로 연결하고, 공공시설에서 먼저 적용한 뒤 민간사업장으로 확산해 국가제도로 발전시키는 상향식 화학사고 예방모델을 인천이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은주 시 환경안전과장은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작업자에게 더 주의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이 순간적으로 착각하더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업환경과 안전관리체계를 함께 개선하는 정책”이라며 “공공시설에서 시작한 현장 실증을 민간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인천의 경험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새로운 표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마련과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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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수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