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다가 문득 멈춰 서서 묻는다. "나는 왜 이 무게를 견디고 있는가?" 처음엔 건강과 자기만족을 위해 시작했던 움직임이, 어느 순간 타인의 시선이라는 궤도에 진입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땀방울의 가치가 거울 속의 숫자가 아닌 스마트폰 화면 속 '좋아요' 숫자로 환산될 때, 운동은 수련이 아닌 노동이 된다.
SNS가 설계한 '이상적 신체'라는 신기루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24시간 내내 완벽한 각도와 자극적인 조명 아래 빚어진 ‘이상적인 몸’을 배달한다. 넓은 어깨, 선명한 복근, 비현실적인 비율. 이 강렬한 이미지들은 은연중에 ‘운동하는 인간’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비교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타인의 보정된 결과물과 나의 투박한 과정을 비교하는 순간, 공들여 쌓아온 나만의 루틴은 초라해진다. 운동은 즐거움이 아닌 의무가 되고,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게 되면서, 조금만 속도가 더뎌도 자신을 ‘게으른 낙오자’라며 채찍질하게 되는 것이다.
몸이 곧 자본이자 브랜드가 된 시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몸도 자본’이라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형체가 아니라 하나의 경쟁력이다. 잘 관리된 근육은 자기관리의 상징이자 매력의 증거가 되며, 때로는 수익과 영향력을 창출하는 브랜드로 작동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운동은 자연스럽게 외부 기준을 추종하는 활동으로 전락한다. ‘좋아요’ 숫자가 내 몸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가 되고, 내면의 만족보다는 남들이 인정할 만한 외형을 만드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된다. 이제 타인과의 비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환경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운동의 본질은 삶을 담아내는 정직한 그릇
그러나 운동의 본래 얼굴은 훨씬 투박하고 정직하다. 운동은 지루한 반복을 견디고, 불확실한 컨디션 속에서도 자신을 믿으며, 지연된 결과를 묵묵히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오늘 하기 싫지만 해내고, 내일은 안 될 것 같지만 한 번 더 버텨보는 그 경험들이 쌓여 자아를 지탱하는 단단한 밑거름이 된다.
우리의 몸은 타인의 피드를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이 아니다. 이 몸은 지금까지의 고단한 일상을 묵묵히 버텨온 물리적 거처이자, 내가 살아온 삶의 기록 그 자체다. 멋진 몸을 향한 욕망은 본능이지만, 그 목표가 '나의 의지'인지 '타인의 기준'에서 빌려온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다시, 나만의 리듬으로
비교의 물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의 기준과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운동은 비로소 나를 위한 행위로 돌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몸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명서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온전히 지탱하고 있는 중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무게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근육의 떨림과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의 근육은 지금 누구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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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숙 기자 다른기사보기
